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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근대적 감성에 대하여

Juzero 2022. 1. 8. 13:25

한국사회의 근대적 감성에 대하여

 

 

사람들은 감성이란 것이 흔히 개인이 지닌 인간의 본성이지 이념이나 사상과 달리 당시의 사회를 대표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의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감성을 표출할 때 이념이 되며 그 공동체 기조가 된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근대(강화도조약~광복) 한국 사회에 일어난 각종 운동과 이데올로기, 대중문화와 예술 등을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 근대 한국인들이 가진 공통된 감성을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감정은 감성을 이루고, 감성은 사회와 관계되어 전체를 움직인다. 한국 근대 사회를 꿰뚫는 국민들의 대표적 감성 중 하나로서 ‘애한’을 말하고 싶다. 당시 우리나라의 현실은 말 그대로 참담하다. 일본은 한국의 물적, 인적 자원을 잔인할 정도로 수탈하면서도 한국의 근대화에 일조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슬픔과 한이라는 감정을 모든 국민들이 공유함으로써 시대적 상황을 대표하는 감성이 되었다. 일제강점 초기에는 한용운, 이육사 등의 시인들이 슬픔과 비통, 민중의 고통이라는 대표적 감성들을 표현했다. 식민지 상황에서 이와 같은 활동들은, 어쩌면 일부 국민들의 내면에서만 움츠리고 있던 통곡을 자극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감성의 기반을 마련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억제 받고 있던 감정들을 표출했고 이는 곧바로 사회를 움직이는 하나의 동력이 되었다. 1919년 3.1운동을 대표하여 민족적인 다양한 운동이 전개되었다. 이 시기의 대표적 감성은 ‘광복을 향한 열망’으로 변화했고, 국민들은 의지를 되찾아 갔다. 이후로도 1929년 광주학생운동과 같이 광복을 위한 의지로 무장한 국민들의 저항에 일본은 충격을 받았다. 한국의 산업, 기술, 정치와 같은 것들의 억압만 중요시했던 일본은 한국인들의 ‘감성’을 억압하기 위해 문화정책으로 방향을 바꿨다. 이렇듯 공통된 감성은 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그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한다.

 

 1930년대 이후 한국의 근대적 감성은 더욱 다양화된다. 김영랑과 같은 순수 서정시, 김광균과 같이 모더니즘을 노래하는 시, 농촌 소설, 역사 소설, 계몽 소설 등 민족의 아픔을 수용하면서도 주체적인 근대 감성을 자아낸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민중의 감성이 더 다양화되고 다른 색깔을 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어 내지만 가장 원초적인 감성인 애한과 광복에 대한 염원은 각 작품의 주춧돌이 되었다. 일제의 언론, 잡지, 책 검열 속에서도 민중을 이끄는 작품들은 창작되었고 예술가들의 몸짓, 소리, 글 하나하나가 국민들과 감성을 소통하는 매개가 되었다. 이런 피나는 노력 속에서 마침내 1945년 광복이 되었고, 1919년 3월1일에 외친 함성과는 다른 감성을 가진 기쁨의 함성을 외칠 수 있게 되었다.

 

 리뷰를 쓰기 위해 한국 근대 사회의 감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봤다. 약 70년 정도의 근대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정서인 슬픔은 처절한 상황 속에서도 국민들이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해준 힘이라고 생각한다. 비통과 분함이라는 공통된 감성을 지닌 한국인들은 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는 감성이라는 인간의 본능적 성질이 공동체에 있어 단순히 시그마적인 효과가 아니라 더 배가된 효과를 일으킨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대에 들어선 후에도 민주화를 위해서, 그리고 IMF 극복을 위해서 온 국민이 같은 감성을 지녔었다. 그렇기에 사회적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지금은 나를 포함한 대한민국 국민들이 모두 공유하는 감성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국민 전체가 하나가 되어야 극복할 수 있는 총체적 난국에 직면했을 때 비로소 모두 공유하는 감성이 형성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