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dy/에세이

침묵의 봄 리뷰, 독후감, 에세이 : 인류의 발전과 생태계의 보존은 양립 가능한가? (자연과 기술 과학 세미나 에세이)

Juzero 2022. 1. 8. 13:06

 

   머리말

 생활하면서 자연의 존재를 느낄 때는 언제일까.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가로수를 보았을 때, TV속에서 다채로운 단풍의 모습을 보았을 때, 혹은 곧 다가오는 차가운 겨울의 향기를 맡았을 때자 연이 와 닿는다고 느낀다. 자연은 우리가 생활하는 그 자체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연의 풍요로움과 아늑함을 느끼기 위해 ‘일부러’ 찾아다닌다.

 인간 또한 생태계 네트워크에 속해 있는 한 ‘종’일 뿐인데, 언제부터인지 인류는 자연과는 별개의 생물로서 자연 산물들을 경제적 가치로서 이용해왔다. 인간이 과학 기술을 오만하게 사용하여 생태계의 흐름을 바꾸어놓기 시작한 기점은 산업 혁명부터일 것이다. 방직 기계와 증기의 등장으로 사회의 부는 축적되었고, 시대는 급변하였다. 카를 마르크스가 분석했던 초기 산업주의는 대다수 사람들의 생활을 참혹하게 하고, 산업 위험도를 높이고, 착취공장을 세우는 등 냉혹한 신생활로 변화시켜 농촌생활을 파괴한 원흉이었다. 또한 도시 산업사회에 대한 비판가들은 자연으로부터 인간이 분리 되었고, 전통 체제는 파괴되었으며, 거대한 시장 경제 체계의 의존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산업사회로의 발전은 인류 전체의 사회의식에 대한 정신적 변화를 주었다. 기득권들의 부의 독점에서 벗어나 더 다양한 계층의 개개인이  부를 추구하게 되었다. 이렇게 부를 좇는 과정에서 생태계와 환경의 파괴가 야기되었다. 나는 이러한 인류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자연에 대한 지배 욕구와 이기심이 생태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고, 인간에게는 어떻게 다시 돌아올지 탐구해볼 필요성을 느껴 이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다.

 

 

본론

 

가. 인류의 발전과 생태계의 파괴, 그리고 인간

1. 살충제의 역효과 : 생태계와 인류의 상호작용

 산업혁명 이후 자연산물은 산술적으로 성장한 것에 비해 인구, 기술, 산업 등의 인류와 관계된 사회적인 자본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다. 사람들의 부에 대한 인식은 확고해졌지만 자연에 대한 존중은 희미하게 사라져갔다. 산업사회 이후 자연을 지배적인 세계관으로 보기 시작했다. 지배적인 세계관이란 인류는 문화와 기술을 통해 자연 환경의 한계를 변화, 조작, 초월하는 능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자연을 공존의 관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 산물을 자유 시장의 속의 공유 자원으로 치부해버린 것이다.

 그 시발점은 농업이다. 농업의 생산성을 위해 종을 단일화 시켰고, 집약적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이렇게 집약적인 농업을 하자 그 지역에 서식하던 다양한 종의 생물이 사라지고, 특정 작물에 대한 해충은 급격하게 늘어나 농부들의 눈엣가시가 되었다. 미국 과학자들은 유기성 살충제를 개발해 무해함을 주장하며 농부들에게 공급했고, 농부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살포하였다. 해충들이 경련을 일으키며 죽는 효과를 보고 살충제는 미국 전역 확산되었다. 

 그러나 자연에서 태생하지 않은 인위적인 것들은 자연과 절대 동화될 수 없다. 곤충이라는 하나의 생물을 박멸하기 위해 사용된 살충제는 이제 생태계 곳곳에서 모든 생물들을 겨냥하게 되었다. 인간의 탐욕에 비롯된 행동들은 자연의 적응 속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새로운 변화를 초래하였다. 봄에 지저귀어야 할 새들은 없고, 푸르게 흔들려야 할 각종 꽃들과 식물들은 더 이상 춤추지 않았다. 살충제의 사용이 환경의 황폐화를 야기하였다. 우리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사용된 ‘살충제’를 이제는 ‘살생제’라고 불러야할 것이다.

 지구의 물의 양은 변하지 않고 계속하여 형태를 바꾸어 순환한다. 바닷물이 증발하여 구름이 되고, 비가 내려 지하수, 강물이 되어 다시 바닷물이 된다. DDT는 이러한 지구적 환류 속에서 생물의 죽음을 야기했다. 환경에 대한 의식이 전혀 없던 농부는 수확물이라는 그의 개인적인 이익만을 위해 DDT를 살포했을 것이다. 그러나 각종 작물과 땅에 스며든 DDT는 농축성, 잔류성이라는 특성에 의해 타 생물에 축적되는 것은 물론 땅 속으로 스며든다. 땅 속으로 흡수된 DDT는 비가 오면 지하수를 타고 더 깊숙한 곳으로 이동하여 시냇물, 강물에 합류하게 된다. DDT가 섞인 유독한 물은 바다로 흐르게 되고 다시 구름이 되어 우리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비가 된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자연에서 태생되지 않은 것은 자연과 동화될 수도 없고, 자연에 의해 자정될 수 도 없다. 해충이 없어진다는 생각으로 농부들이 콧노래를 부르면서 지속적으로 살포한 DDT는 자연 생태계에 계속해서 농축, 축적이 되고 처음에 뿌린 아주 적은 양은 무해하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서서히 자연생태계의 파괴를 불러일으켜 결국은 그 옥좨가 인간에게까지 다다를 것이다. 20세기 미국 전역의 유기 인산계 살충제로 인해 의도치 않은 식물, 동물, 어류, 곤충 들이 죽음을 맞이하고 생태계가 교란된 사례는 무수히 많다.

 미국의 한 주(州)에서 단 한 종의 곤충을 없애기 위해 200~300만 에이커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살충제가 뿌려졌다. 이 살충제는 개울가, 숲속에 흡수되어 지표면으로 스며들고 바다에 이르렀다. 또한 곤충이나 설치류를 없애기 위해 농지에 뿌린 수백만 파운드의 농약이 비를 타고 씻겨 내려가 바다로 흘러들어갔다. 그러자 시냇물과 식수에 화학물질이 포함되어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펜실베이니아 주 과수원 지대의 식수를 실험실로 가져가 물고기를 넣어두었더니 불과 4시간 만에 죽을 정도였다. 목화밭에 톡사펜이라는 살충제를 뿌렸다가 빗물을 따라 앨라배마 주 테네시 강의 15개 지류에 흘러들어 강에 사는 물고기들이 다 죽은 경우도 있다. 이 지류 중 두 곳은 도시의 수원(水原)이기도 했다(더 다양하고 구체적인 사례는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란 책 속에 많다.).

 어류 뿐 만이 아니다. 20세기 미국에서는 살충제의 과다 사용으로 인해 독수리, 찌르레기와 같은 동물을 포함해 각종 나무, 해충을 포함한 익충 등이 떼죽음을 맞이하였고, 심지어 농약으로 인해 사람이 죽거나 신체적 손상을 입은 경우도 있다. 당시의 관료들, 과학자들과 농부들은 생태계와 인간의 상호작용을 무시하고 당장 눈앞의 이익을 좇았던 것이다. 심지어 해충의 천적을 활용한 생물학적 살충 방법을 고안하여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유기 살충제를 개발하는 과학자들은 그들의 말을 등한시하였다. 그 속에는 ‘돈’이라는 이해관계가 얽혀있었으며, 순수학문을 지향하는 과학자는 자연을 탐구하는 소명의식보다 사리사욕을 더 우선시 한 것이다. 

 

*자료:Stern et al., 1992: 34

 

 

 인간과 생태계의 상호작용을 도식화한 도표이다. 이 도표에서 두 가지 근원적 요인은 ‘인간 사회 체제’와 ‘생태계’이다. 살충제의 사용과 그 결과를 저 도표에 적용하여 살펴볼 것이다. 인류는 산업 혁명으로 부에 대한 새로운 개념과 인식이 자리 잡혔고, 기존의 수확량에 만족하지 못하는 농부는 농작물을 단일화시키고, 집약적인 농사 방식에 집중한다. 농작물을 망치는 해충을 박멸하고 싶었고 이는 곧 과학자들이 DDT를 발명하는 동기가 되었다(인간 사회 체제). 미국 전역에 DDT의 사용이 일반화 되었고 수십 년간 계속해서 살포되었다(직접적인 인간 원인). 해충을 박멸했지만, 각종 익충과 식물들 어류, 동물 등은 DDT의 유독성 때문에 죽음을 당했고 생태계 네트워크에 장애가 생겼다(생태계). 해충 방제 효과 입증하였고 농작물의 병해를 막기 위해 더 많은 DDT를 사용하였다. 나아가 과학자들과 살충제 생산 회사들은 막대한 돈을 벌었다(인간이 가치를 두는 것에 직접적 효과). DDT의 사용은 꿀벌의 유독성 중독으로 인한 떼죽음, 가축의 질병, 어류의 떼죽음으로 인한 달팽이의 급증 등의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생물들의 몸에 축적되어 각 계의 생물들에게 퍼져나갔다(생태계 내부 그리고 생태계 사이에서의 변동원인). 이러한 상황은 결국 인간이 먹는 모든 식량에 DDT가 함유되어 결국 인간도 DDT가 축적되는 하나의 그릇이 되어 건강에 해를 입을 것이 분명하다(인간사회체제).

 이러한 무한 알고리즘을 통해 생태계와 인간의 상호작용을 이해함으로써 살충제의 사용에 대한 과정과 결과를 알 수 있다. 이 위험성을 자각하여 결국 생물학적 살충 방법도 등장하였고, DDT의 사용금지가 법적으로 제정되었다(인간사회체제 내부 그리고 인간사회체제 사이에서의 변동원인). 이 알고리즘에 살충제를 대입함으로써 부정적 결과를 낳았지만, 반대로 긍정적인 요소를 대입한다면 인간과 생태계가 공존할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즉, 정적으로 머물러 있는 범지구적인 생태계는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대답을 달리해줄 것이다.

 

 2. 종 다양성의 감소.

 우리는 확실히 식량, 피복, 목제품 들을 제공하는 생물종들의 가치에 고마워(appreciate)하고는 있지만 생태계 내에서의 종 다양성 그 자체의 가치는 인간에 의해 대단히 저평가(unappreciate)되고 있다.. 특히 종 다양성이라는 생물학적인 문제는 굉장히 중요한 것임이 분명함에도, 인간들은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 종만 소중히 하는 과거의 연혁 때문에 종 다양성은 훼손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산림이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의 걸쳐 역사상 존재했던 산림의 2/3은 사라졌다고 말한다. 특히 열대산림은 지구 표면의 약 6%인 낮은 비율을 차지하지만, 기후의 특수성 때문에 어느 지역보다 다양한 종류의 생물들이 서식한다. 열대 산림은 생물학적 종이 훨씬 다양하고, 더 빠르게 성장하고, 더 잘 망가지며, 더 약하다. 한 지역의 나무가 제거되었을 때, 열대 폭우는 토양의 영양분을 빠르게 용해시키고 침식시킬 것이며, 생물들의 서식지는 파괴되고 재생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산림은 자연을 안정화시키고, 토양을 보호하고, 영양소를 저장하여 순환시키는 등 생태계에 다양한 기능을 제공한다. 또한 유수의 양과 질을 조절하고, 홍수를 방지하며 하류 지역의 가뭄을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범지구적으로 산림은 국지적, 지역적 수준에서 기후를 온화하게 하고 지구의 에너지를 균형 있게 만드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필수불가결한 산림의 파괴 원인에는 농업용지의 확대, 도시화, 목재 수출을 위한 벌목, 산림에 대한 가치 절하를 들 수 있다. 더 직접적인 이유로는 이윤을 추구하는 다국적 목재, 종이회사, 국제적 부채를 상환하고자 열망하는 저발전 국가의 정부 정책 등의 다양한 행위자들과 기구들이 연루되어 있다. 쉽게 말해서 인간 때문이다.

 

 인간에 의해 종 다양성이 감소하는 원인에는 크게 3가지가 있다. 첫째, 인간이 지구 내의 지역을 지배하려는 욕망 때문이다. 아마존이나 인도네시아의 열대우림 같은 경우도 지구의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전체 생물 종의 50% 이상이 있다. 그런데 인간은 더 많은 경제적 자원과 지배적 욕구 때문에 천연자원들을 무차별적으로 착취한다. 이러한 인간의 특수성은 생물 종의 다양성을 심하게 훼손한다.

 둘째, 근대 농업의 등장이다. 지금까지 인간은 역사적으로 식량을 위해 7,000종 이상의 식물을 이용해왔는데,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20여 종을 사용할 만큼 크게 감소하였다. 밀, 옥수수, 쌀 따위 등이다. 집약적 농업을 통해 폭발적 생산이 가능한 종만 선택하여 단일화 시킨 결과이다. 1959년 말 스리랑카의 농부가 경작하는 쌀의 품종은 2,000종 정도였지만 오늘날에는 주요 5종만 경작한다. 

 셋째, 지구기후가 온난화되는 온실효과의 연장선에서 생물의 종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구온난화는 계절, 강수, 해류 등의 기후와 생명보전체계의 일부분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구의 기온이 높아지는 것은 산림 생물자원의 고사와 부패를 증가시키는 원인이 된다. 실제로 가장 큰 산림인 북부 고위도 지방에 위치한 산림 지역은 온실효과의 영향을 받는 지역 중 가장 온도가 많이 올랐다. 그로 인해 일부 지역에서는 건조현상과 집단폐사가 발생하였다. 기후 변화로 인해 생물들은 다른 서식지로 옮겨가야만 생존할 수 있겠지만, 인간이 무수히 많은 서식지를 파괴한 탓에 갈 곳을 잃었다.

 우리 인류가 종 다양성을 지켜야 하는 이유에는 최소한 2가지가 있다. 첫째, 자연은 인류에게 경제적, 실제적, 잠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둘째, 종 다양성은 모든 생태계 네트워크가 궁극적으로 서로 의존하는 관계에서 다양한 지위를 가지고 생태계를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인간중심적인 사고관이다. 인간이 그들의 필요에 의해 자연산물을 이용했다면, 그들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보호해야하기도 한다. 인간은 자연물에서 아주 다양한 원료들을 얻는다. 기름, 껌, 고무, 알코올, 향료, 염료 등은 우리가 사용하는 각종 생활용품 및 식자재로 활용가능하다. 나아가서 자연에서만 얻을 수 있는 치료제와 약제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태평양 상록수의 껍질에 들어있는 택솔이라는 물질은 암을 치료하는데 효과적이라는 연구 발표가 있다. 또한 아프리카 섬나라 마다가스카르 지역에서 서식하는 장미로부터 얻어낸 염기성 물질인 알칼로이드 덕분에 백혈병 환자들의 고통을 덜게 할 수 있다. 이렇게 자연에서 획득한 자원들은 경제적으로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음에도 환경파괴로 인해 그 잠재성들을 잃고 있다.

 

 두 번째, 생태계 유지 기능이다. 생태계 내에는 다양한 생물 종들이 먹이사슬을 유지하고, 지구의 에너지를 순환시키며 전체 생태계 개체수의 균형을 바로잡아준다. 다양성은 생태계의 기초인데, 우리 인간이 종의 다양성을 감소시킴으로써 지구 생태계의 기능과 안정성이 위협을 받을 수가 있다. 인간이 인간만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 개조하고, 전유물로써 생각하는 것은 지구의 종말을 더 앞당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종이 다양할수록 자연재해에 더 견고하게 대응할 수 있고, 자연의 재생과 복원도 더욱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자연이라는 한정적인 자원을 한 종의 개체들이 이용하는 것보다 다수의 종의 개체들이 이용하는 것이 더 다양하고 복합적인 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류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천연 자원들을 목적으로 환경을 파괴하면서 종 다양성을 훼손시켰지만, 향후 그 결과는 인류에게 더 무섭게 돌아올 것이다. 인간은 그들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종의 다양성을 존중해줄 필요가 있으며 생물학적인 부분들을 이용하기만 하려는 잘못된 생각을 바로 고쳐야 한다.

 

 

나. 자연 복원 : 인류의 안녕을 위한 노력.

  1. 인간은 왜 자연을 다시 복원하려고 하나?

서울의 서울 숲 조성, 미국의 국립공원 지정을 비롯한 각 나라의 국립공원 지정은 자연을 지키고자하는 노력들의 결과물이다. 산업혁명 이후 자연에 대한 지배적 인식은 왜 바뀌게 되었고, 인간들은 그들이 파괴한 자연을 엄청난 자본을 들여가면서 복원하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환경과 지구에 대한 걱정과 그들도 자연이 한 종(種)일 뿐이라는 생각에서 우러난 순수한 마음은 아닐 것이다.

 산업사회 이전의 사회적 활동은 자연을 크게 훼손시킬만한 힘을 갖지 못했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자연에 끼칠 수 있는 능력의 범위가 대폭 높아졌고, 경제와 자연에 대한 인식도 상당히 달라졌다. 또한 초기에는 사회체제, 복지, 문화, 경제가 불안정하였다.  그래서 약 200년 그 동안 가보지 못했었던 오지의 세계들과 그 곳의 자원들의 경제적 가치에 눈이 멀어 생태학적 질서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러나 산업사회 후기, 과학자들에 의해 자연의 훼손은 인간에게 귀결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대로 간다면 인류는 더 이상 생존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우쳤을 것이다. 그 후, 모든 1차 생산물의 근원지인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더욱 중요시하게 되었고 각종 환경운동들이 시작되었다. 인류에게 다가올 위험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애덤스미스는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건 푸줏간 주인, 술도가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생각 덕분이다. 우리는 그들의 박애심이 아니라 자기애에 호소하며, 우리의 필요가 아니라 그들의 이익만을 그들에게 이야기할 뿐이다.”라고 하였다. 즉 사회가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는 이유는 개개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행동하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자연을 보존하고 파편화된 생태계를 다시 복원하려는 사회적 행위는 결국 ‘인간(개인들)의 안녕’이라는 이익을 위해서이다. 물론, 생명의 가치를 지키고자하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서 각종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세계의 경제, 정치, 사회, 문화를 이끄는 각 계의 기득권층들 모두가 그러한 순백한 마음으로 자연 복원을 주장할리 만무하다. 겉으로는 순수한 환경운동가들과 손을 맞잡고 지구 문제에 대해 다양한 해결 방법을 강구하지만, 그 속에는 그들은 단지 단기적인 이득과 손해를 계산하고 행동한 것일 뿐이다. 지금 당장에도 산림, 수자원, 토양, 동물 등의 생태계 자원들은 상당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낸다. 하지만 그들은 산업사회 초기와는 달리 코앞의 이익이 아니라 장기적인 이익을 내다본 것이다. 환경파괴로 인해 겪을 향후의 문제들은 인류에게 큰 위협이 된다. 이러한 경제학적 계산으로 손익을 따져보았을 때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 최적의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미시적 관점에서 개인만을 보았을 때 그(개인)는 ’자연의 가치와 생명 존중을 위해‘라는 주장을 내세울 것이다. 그러나 거시적 관점에서 인류 전체를 보았을 때, 지구를 벗어나서는 살 수 없는 인류는 그들의 행동이 향후 인류의 생존에 큰 위협이 되기 때문에 자연을 보전하려는 것이다. 즉, 생태계의 종 중 유일하게 잉여산물과 경제성을 추구하는 인간은 그들(themselves)의 영속적인 안녕을 위해 자연을 복원한다.

 

 결론

   인간이라는 종의 특성. 양립 가능성.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인류의 삶과 사회 변화를 주도했다. 정치, 경제, 과학, 문화, 복지 등 수 많은 분야가 기술의 발달에 따라 변해왔겠지만 가장 크게 피해를 입은 것은 자연이다. 살충제의 사용으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 종 다양성 훼손으로 인한 자연의 파편화 등 인간에 의해 발생한 문제는 지구가 40억년 동안 일구어낸 자연을 단  2~300년 만에 휘저어놓았다. 

 인간에 의해 곪아버린 부분은 토양, 수자원, 대기 등 많지만 나는 DDT와 종 다양성 훼손이라는 사례를 들었고, 자연을 복구하려는 행위의 속성을 생각해보면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나는 인간들이 3페이지에 있는 도식을 인식하고 행동한다면 공존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 목적이 인류의 영속성을 위한 것이던, 순수한 자연의 보존을 위한 것이던지 상관없이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연을 그들이 생존 가능할 정도까지만 이용하고 파괴하면서 보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즉, 오만하게도 자연의 미래 모습과 영향들을 예측하면서 자연을 이용하기도 하고 보호하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향후 과학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자연마저도 인간의 생명 존속에 있어 사용 가치가 사라진다면 가차 없이 무차별하게 이용할 것이다. 자연은 인간의 손아래에서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종속적인 것이 아님에도, 인류의 안녕을 위한 종속물로서 치부하는 생각은 사라져야 한다. 과학 기술의 발전이 인류를 변화시키고 자연을 변화시켰듯이, 과학 기술을 겸손하고 신중하게 활용해야 자연과 인류의 양립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 참고문헌
  • 침묵의 봄 ( 저자 : 레이첼 카슨 )
  •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한 환경사회확 ( 저자 : 찰스 L. 하퍼 )
  • 미국의 자연관 변천과 생태의식 ( 신문수 엮음 )
  •  Lenski and Nolan, 1999
  •  Young, 1994
  •  Wilson, 1990
  •  Meadows et al. 1992
  •  Cunningham dt al., 2005
  •  Myers, 1997
  •  Miller, 2002
  •  Miller, 2004
  •  Tuxil,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