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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 리뷰] 불교적 관점에서 바라본 신과함께(인과 연)

Juzero 2022. 1. 8. 13:49

관계

 

 

 영화의 완성도, 이야기 구성, 깊이, 연출의 분석적인 접근보다는 인연 (因緣)의 의미에 초점을 두면서 영화를 봤다. 강림, 해원맥, 덕춘.  3명의 차사가 1000년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는 그 시작에는 인연이 있었고, 과거의 업이 있었다. 강림은 해원맥에게 용서를 구해야 했고, 해원맥은 덕춘에게 용서를 구해야 했다. 그 시간이 1000년이 걸린 것이다. 용서를 구하는 사람과 용서를 해주는 사람은 다르지 않다. 나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기도, 타인의 잘못을 용서를 해주어야 하기도 한다. 타인과의 관계는 꼬리의 꼬리를 물고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연결되어 있다. 덕춘의 부모님을 죽인 해원맥은 덕춘과 인()의 관계를 맺는다. 해원맥을 북방 국경으로 보내어 하얀 삵의 존재로 만들어서 덕춘의 부모님을 죽이게 한 강림은 덕춘과 간접적인 원인으로 연결되어 연()의 관계를 맺는다. 강림은 결국 해원맥을 살해하여 죽음에 있어서 인의 관계를 맺고, 아무 관계도 없다고 생각되는 강림과 덕춘은 서로를 죽이게 되는 인연의 관계를 맺게 된다. 3명이 서로를 죽인 상황은 갑작스레 독립적으로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다. 해원맥을 양자로 받아들인 아버지의 행위, 해원맥에게 시기와 열등감을 느낀 강림의 마음과 말, 해원맥이 하얀 삵으로서 살아간 행위들이 쌓은 시간의 결과이다. 그러게 쌓여간 시간들 속에서 작용한 그들의 업이 원인이고, 비참한 죽음이 결과가 되었다.

 

우주는 아무 의미가 없다. 오직 물리 법칙에 의해 생성되고, 움직이고, 소멸하고, 존재한다. 어떤 현상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고 착각이다.’ 과학계에서 통용되는 말이다. 하지만 인간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을 조절하는 절대 법칙이란 없다. 그 어느 사소한 것도 의미가 있고, 그것은 마음에 쌓인다. 사물이건 사람이건 동물이건 나와 타자 사이에 보이지 않는 붉은 실과 같은 인연으로 연결되어 관계가 형성된다. 그 결과는 알 수 없다. ‘신과 함께에서 강림의 아버지가 해원맥을 양자로 받아들인 일이 시간이 지나 서로를 죽이는 결과로 맞이한 것처럼 말이다.

 

 () 없이는 어떠한 결과가 있을 수 없고, ()이 쌓이지 않았다면 인이 만들어지 않는다. 결과가 있다는 것은 반드시 인과 연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월요일 아침 9시 000 교수님의 불교와 인간 수업을 듣게 된 결과에는 수강신청이라는 인이 있었다. 00대학교 입학, 강의 평가 등의 연들이 쌓여 인을 만나 이 수업을 듣는 결과를 만들었다. 이 결과가 또 다른 인이 되고 연이 될 수 있다. 수업을 들으며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된다면, 수업을 듣는 결과가 새로운 친구와의 관계에서는 인()으로써 작용한 것이다. 

 

우리의 삶은 이 무수한 인연의 작용들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의 결과가 내일의 원인이 되고, 오늘의 업보가 미래의 어떤 결과를 불러올 지 알 수 없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알 수 없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오직 현재이다. 지금 이 순간 인연을 만들고 관계를 맺고 업을 쌓아가는 현재의 나에 집중해야 한다.

 

모든 행위는 마음의 의도가 작용한 결과이다. 그렇다면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선연을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마음의 의도를 만들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어느 사소한 것도 의미가 있고 마음에 쌓인다. 무의식적으로 지나치고 읽었던 글귀가 어느 순간 가슴에 와 닿듯이, 자신도 모르게 축적된다. 따라서, 좋은 생각과 감정, 행위, 감각, 느낌들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 방법은 간단하지만 어렵다.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진심으로 대하며, 사랑할 뿐이다. 현재를 미래의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고, 과거의 결과로서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하는 행동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는 사실이 얼마나 재미있고 흥분되는 일인지 알아야 한다. 스스로의 행동의 준칙을 세우고 신념에 따라 행동하며, 그 누구도 수단으로서 대하지 말고 목적으로 대하여 한다. 그러면 좋은 생각, 감정, 행위, 감각, 느낌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이것들이 인과 연이 되어서 좋은 관계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움직일 수 없듯이, 마음이 시키지 않는 일을 한다면 삶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국가를 배신하면서까지 아이들을 돌보는 해원맥을 보며 삶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삶을 채우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도 오랑캐이며 어렸을 적 부모를 잃었던 경험에서 도출된 동정심이라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아니다. 하얀 삵의 삶에서 채워지지 않던 감정들이 그를 이끌었을 것이다. 그의 내면에서 나오는 고유한 욕망으로 새로운 인생을 채우는 것이다. 그 욕망은 부성애인지, 형제애인지, 부모를 죽인 죄책감인지 그 외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사랑이다. 사랑이 해원맥의 삶을 채워준 것이다. 아이들에게 주는 사랑과 아이들로부터 받는 사랑의 교감이 그를 이끌었다. 사랑이 인이 되었고 연이 되어서 부모를 죽인 원수에서 보호자로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었다. 나의 삶을 채우는 것은 무엇인가? 내 안의 깊은 내면에서 나오는 고유한 욕망은 무엇인가? 스스로 성찰해보아야 할 것 같다. 

 

 사실 감상문을 쓰는 과정이 자아성찰의 시간이었다. 나는 지금 앞에서 말한 모든 것들을 행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그 말들을 적어냈다. 좋은 인연과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좋은 마음과 의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스스로가 그러지 못하고 있다. 현재를 미래를 위한 수단으로서 생각하지 말라고 하였지만, 그것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책이었다. 비난 아닌 힐난이었다. 집중해야 할 것은 현재라고 말하지만 난 그렇지 못하고 있다.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진심으로 대하며, 사랑할 뿐이라고 말했지만 난 항상 다른 시간을 생각했었다. 한편, 내 또래의 친구들이 가장 힘들었다던 고3 시절에 나는 위에 말한 모든 것들을 행했었다. 그 순간에 최선을 다했고 사랑했고 즐겼다. 미래를 걱정하지 않았고 그 당시의 현재를 이용하지도 않았다. 좋은 의도가 나를 껴안았으며, 무의식 안에는 좋은 마음만 가득하여서 모든 행위들이 만족스러웠다. 그 인연들이 모여서 00대학교 입학이라는 좋은 결과를 이뤘고, 건강한 현재의 가 있다. 

 

그러나, 제대를 한 후에 지금 나는 대단한 무엇인가를 이뤄야 하고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뭐가 좋은 지도 모르면서 더 좋은 미래를 위해 현재 무엇을 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며 지금을 희생시키고 있다. 지금 그러지 않으면 미래에 후회할 것 같다는 미명 아래에 나를 갉아먹고 있다.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한다. 내면의 고유의 욕망은 정해져 있다고 단정짓고, 그것만 찾으려고 애쓴다. 다른 욕망들은 내 것이 아니라며 걷어낸다. 그것만 찾으면 내 삶을 채워질 것이라고 스스로를 기만한다. 결국 나는 나 스스로와의 관계에서 좌절감을 맛보고 있다. 이 마음들은 무의식 속에서 쌓여서 더 나쁜 나를 만들어가는 느낌이다. 

이 과정에서 이번 학기 일정들도 한 몫 했다. 월요일, 수요일은 6시부터 11시까지 아르바이트, 화요일은 야간 수업, 목요일은 봉사단 회의, 금요일은 멘토링 봉사활동, 매주 주말에는 지금까지 해온 활동들의 각종 행사가 매주 반복되었다. 그래서 한 주를 어떻게 보냈는지 생각도 못해보고 다시 월요일이다. 이것들이 나의 인연이고 그 관계를 쉽게 끊을 수 없다. 개강을 하고 3달 동안 바쁘게 살아왔는데 막상 돌이켜보면 무엇을 했나 싶다.

 

 하지만, 나는 이런 나조차 사랑한다. 인생이 즐겁고, 알차고, 뿌듯하기만 할 수는 없다. 지치고 힘든 방황의 시간을 보내며 더 깊은 생각을 했고, 더 깊은 자아성찰을 통해 배운 것들이 있다. 지금의 시간들이 없었다면 배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랑한다. 이것도 내 삶의 일부이니 말이다. 이것도 나다. 나는 나와 더 좋은 관계를 위해 지금 서로 더 단단해지는 과정을 겪는 것이라 생각한다. 본 과제를 통해서 나를 직면하고 받아들이고 정리할 수 있었다. 과제를 하는 순간만큼은 내 생각에 집중하고 나에 대해 집중해서 작성할 수 있었다.